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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있지만 교육은 없다: AI 시대 교육의 본질

칠판 앞의 질문, 학교를 교육으로 되돌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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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학생들이 교문을 들어선다.

교실에는 칠판이 있고, 교과서가 있고, 시간표가 있다.

종이 울리면 수업이 시작되고, 시험이 끝나면 성적이 발표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학교는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학교를 떠났지만 국어를 교실에서 30년 이상 가르치며 한 가지 질문을 품고 살았다.

"학교는 있다.

그러나 정말 교육은 있는가?" 학교와 교육은 같은 말이 아니다.

학교는 건물이고 제도이며 공간이다.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과정이다.

학교가 존재한다고 해서 교육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육의 본질을 잃은 학교는 아이들을 더 치열한 경쟁으로 몰아넣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국어 시간에 윤동주의 「서시」를 가르칠 때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나는 교과서를 덮게 하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윤동주 시인이 말한 '부끄럼'은 무엇일까?", "여러분은 어떤 삶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가?" 처음에는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잠시 후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친구가 힘들어하는데 모른 척했던 일이 떠올라요." 또 다른 학생은 "부모님께 거짓말했던 일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날 교실은 시험을 준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삶을 성찰하는 공간이었다.

학생들은 시를 해석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날 무렵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이거 시험에 나와요?"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학생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도록 만든 학교 수업의 결과였다.

우리는 작품이 던지는 질문보다 시험에 나올 답을 더 중요하게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맹자는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가운데 두 번째를 이렇게 말했다.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맹자는 부와 권력보다 양심을 더 큰 행복으로 보았다.

자신의 양심 앞에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군자(지성인)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윤동주의 「서시」는 2천 년 전 맹자의 가르침과 만난다.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소망은 하늘과 사람 앞에 떳떳한 삶을 살고자 했던 맹자의 정신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오늘의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우리는 지식을 전수하고 있지만 양심을 가르치고 있는가.

대학 합격을 준비시키지만 정직한 삶도 함께 안내하고 있는가.

정답을 찾는 능력은 키우지만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도 허용하고 있는가. AI는 지식을 기억하고 계산하는 일에서 인간을 앞서고 있다.

그러나 AI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양심으로 갈등하지도 않는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의 경쟁력은 더 많은 암기가 아니라 공감하는 능력, 질문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을 성찰하는 능력이다.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좋은 대학에 보내는 일이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일이다.

시험 성적은 인생의 일부일 뿐,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학교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는 학교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깊이를 되찾아야 한다.

교실에서 다시 "왜?"를 묻고, 시 한 편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을 때, 비로소 학교는 교육의 이름을 되찾게 될 것이다.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은 많은 지식 쌓기와 문제 풀이가 아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사람 앞에 떳떳하게 살아가려는 한 사람을 길러 내는 교육이다.

그때 비로소 학교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공간이 될 것이다.

강유향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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