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카 봉사단, 몽골과학기술대학교(MUST) 최근 몽골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주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학생들은 매우 성실하다.
강의 내용을 꼼꼼히 기록하고 과제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시험 성적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수업이 끝난 뒤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 뜻밖의 침묵이 흐른다. “왜 행렬이라는 개념이 필요했을까?” “왜 미분은 탄생했을까?” “이 수학은 현실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을까?” 학생들은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그 문제가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공식을 적용할 수는 있지만, 그 공식이 인간의 어떤 고민과 필요 속에서 탄생했는지는 말하지 못한다.
그 순간 나는 교육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온 것일까.
교육은 본래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 교육은 이해보다 정답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학생들은 ‘왜’를 배우기보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를 먼저 익힌다.
질문하는 법보다 답안을 작성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사고력을 기른다고 말하지만 실제 교육은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능력을 평가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대 교육의 구조적 한계다.
시험은 정답을 측정하기는 쉽지만 이해를 측정하기는 어렵다.
깊이 있는 사고는 숫자로 평가하기 어렵지만 정답은 점수로 쉽게 환산된다.
결국 학교는 사고를 키우는 공간이기보다 점수를 생산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기 쉽다.
그러나 인간의 성장은 점수로 설명되지 않는다.
역사를 바꾼 사람들은 기존 문제를 가장 빨리 해결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누구도 던지지 않았던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었다.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보며 “왜 아래로 떨어지는가”를 물었고, 아인슈타인은 “빛과 함께 달린다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를 상상했으며, 다윈은 생명의 다양성을 관찰하며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인류의 위대한 발견은 언제나 정답이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학교는 왜 질문보다 정답을 가르치게 되었을까.
우리가 배우는 지식은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모든 지식은 특정한 시대와 사회, 문화 속에서 인간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며 만들어 온 결과물이다.
그러나 근대 교육은 오랫동안 완성된 지식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왔다.
지식이 형성된 역사와 맥락은 점차 교과서에서 사라졌고, 학생들은 지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결론을 암기하는 데 익숙해졌다.
오늘날 학문은 이러한 지식관을 다시 성찰하고 있다.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조차 패러다임의 전환을 거치며 발전한다고 설명했다.
사회구성주의 역시 지식은 사회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고 끊임없이 수정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최근에는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 인도 등 비서구 문명의 학문적 기여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는 지식이 특정 문명의 독점적 산물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함께 축적해 온 공동의 유산임을 보여준다.
결국 교육은 완성된 지식을 전달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수정되었으며, 어떤 시대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발전해 왔는지를 함께 가르칠 때 학생들은 비로소 지식을 살아 있는 사고의 과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AI 시대를 맞아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더 빠르게 검색하며, 더 정확하게 계산한다.
이제 정답을 찾는 능력만으로는 인간의 경쟁력을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AI는 이미 답을 제시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은 역할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결국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앞으로의 교육이 세 가지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질문하는 능력이다.
좋은 질문은 좋은 답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질문은 새로운 지식을 탄생시키는 출발점이 된다. AI가 답을 찾는 시대일수록 질문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더욱 인간적인 역량이 된다.
둘째는 연결하는 능력이다.
지식은 점이다.
이해는 점과 점을 연결하여 의미를 만드는 과정이다.
수학은 역사와 연결되고, 과학은 철학과 연결되며, 기술은 인간의 삶과 연결된다.
교육은 정보를 전달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식 사이의 관계를 발견하도록 도와야 한다.
셋째는 의심하는 능력이다.
비판적 사고는 단순히 반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자신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것조차 다시 바라볼 수 있는 힘이다.
질문 없는 지식은 쉽게 권위가 되고, 의심 없는 교육은 암기가 된다.
교육은 정답을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 정답조차 다시 질문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교실의 수업 방식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교육과정과 평가체제 역시 함께 바뀌어야 한다.
아무리 창의성과 역량 중심 교육을 강조하더라도 대학입시와 학교 시험이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능력만을 평가한다면 교실은 다시 문제풀이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교육과 평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없다.
우리나라의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자기주도성, 역량 중심 교육, 융합적 사고를 강조하고 있다. OECD가 제시한 「Education 2030」 역시 미래 교육의 핵심을 지식의 양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에서 찾고 있다. AI 디지털교과서 또한 학생 개개인의 사고를 확장하고 학습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때 비로소 교육적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
학생이 얼마나 많은 정답을 맞혔는가보다 어떤 질문을 만들었는지, 어떤 논리로 설명했는지, 서로 다른 지식을 어떻게 연결했는지를 함께 평가하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질문과 탐구를 평가하지 않는 교육은 결코 질문하는 인간을 길러낼 수 없다.
나는 학생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한다. “시험이 끝난 뒤에도 남아 있는 것이 진짜 배움이다.” 공식은 잊힐 수 있다.
시험 점수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러나 스스로 질문하는 습관은 남는다.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능력도 남는다.
서로 다른 지식을 연결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힘은 평생 그 사람의 자산이 된다.
교육은 학생들의 머릿속을 지식으로 채우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 사고하고, 질문하고, 의심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이다. AI는 앞으로도 인간보다 더 빠르게 정답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선택해야 하는지, 그리고 서로 다른 지식을 연결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미래 교육의 경쟁력은 정답을 얼마나 빨리 찾느냐에 있지 않다.
얼마나 본질적인 질문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에 있다.
몽골의 한 교실에서 시작된 나의 질문은 이제 우리 교육 전체를 향한 질문이 되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정답을 가르쳤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질문을 허락했는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AI 시대, 우리가 학생들에게 남겨 주어야 할 것은 더 많은 정답이 아니라 스스로 세상을 질문할 수 있는 힘이다.
그것이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능력이자, 교육이 끝까지 지켜야 할 마지막 가치일 것이다.





